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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금을 뽑아서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연신내문고에 들어가서 뻔한 말만 적혀있는 심리학 책을 훑다가 가격이 과하게 설정된 것 같은 디자인 책을 스치듯 넘기고는 세상에서 제일 쉬울 것 같은 영어책을 한 권 사서 들어왔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혼자서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시선이 가는대로 발을 옮기고 그냥 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둘 훑다가 손에 잡힌 책 한 권을 계산했다. 나를 위해 행동하는 방법 자체를 잊은 것 같다.

  오늘 하루는 멍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 카페에 엎드려 한 30분, 급한 일 처리를 위해 다이어리에 동그라미를 수어 번, 벽제에서 밥을 먹고 유자를 마시고 선생님들과 담소를 조금 나눈 뒤에 다시 멍. 창업넷에 카드 결재건 등을 처리하고 패널 13개를 받아 결제, 배너와 현수막을 대충 만들어 인쇄소에 넘긴 뒤 사무실에서 들고 온 과자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당분에 머리가 지끈거릴 즈음 퇴근을 마음먹었다. 지하철에서는 내 지쳐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오늘은 술을 한 잔 마셔볼까 하다가 괜히 아프면 서러울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아침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려다 봤다. 아아- 이러면 안 되지. 켜져있는 옷방의 불을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약을 한 번 더 먹어볼까. 의사선생님께서 과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팔 뒤꿈치가 시리다. 가슴을 타고 올라가 목과 얼굴을 거쳐 머리까지 차갑게 시릴 것만 같다.